꼭 해야 하는 일은 많지 않다
기어코 몸이 탈 났다. 쓰러질 거 같은 기분으로 위태위태하게 여름을 보내면서 '어랏, 그래도 내 몸이 버티네' 생각했었는데, 정말 간신히 큰일이 끝날 때까지 버텨내 준 거였나 보다. 고맙고 미안하다, 내 몸아.
무조건 쉬어야 한대서 어젯밤에 8시부터 누웠는데, 겁나고 속상해서 잠이 오지 않아 3시가 넘어서야 잠들었다. 그래도 다행인 건, 내일은 아직까지는 일이 없는 주말이라는 거. 달력을 보니 16주 만이다.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주말이... 그리고 또 정말 다행인 건, 병원이랑 안 친한 내가 웬일로 용케 일찍 병원으로 갔다는 거. 얼굴이 팽팽한 여의사가 마치 점쟁이처럼 "어휴, 요즘 스트레스 엄청 많았구나. 많이 피곤했죠?" 하는데, 나 힘들었던 거 이 사람이 알아주네 싶어서 울컥하기도 했고 위안이 됐다. 거참... 부디 후유증 없이 조금만 앓고 나았으면 좋겠다.
아플 때면 늘 건강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, 나으면 또 금세 까먹는 게 문제. 사실 세상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은 거 같다. 스스로 결정만 하면 안 해도 괜찮은 일들이 대부분일지도. 완벽하고 싶지만 행동력과 실천력은 절대 따라주지 않는 나는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다. 이거 해야 하는데. 하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데.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좀 내려놓자.
머리카락이랑 먼지가 카펫이 돼도 괜찮아. 화장실 청소 한 달 넘게 안 하면 좀 어때. 현관에 재활용이 넘쳐나도 괜찮고. 요리 좀 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. 포기하면 쉬워. 책이랑 영화랑 영상 챙겨볼 시간 안 나면 보지 마. 실제로도 안 보고 있잖아. 일은... 잘해야지. 그런데 안 풀리면 안달복달 말고 일단 패스했다가 되돌아가자. 그리고 두 가지를 병행하는 상황에서 이번처럼 그만큼을 소화하는 건 무리였어. 잊지 마.